mid-may


밴쿠버에 여름이 왔다. 초여름이다.
아침저녁에는 아직 긴 재킷이 필요하다가도 이내 반바지로 갈아입고 싶어지는 낮의 연속이다. 파랗고 높은 하늘과, 선명한 산봉우리들, 짙은 녹음이 이렇게 또 찾아왔다. 지난 겨울은 그리 길었던 것 같지가 않다. 학교와 일을 병행하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새로운 계절이고 새로운 풍경이다. 불만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학생으로 삶이 바빠지고 나서, 시간 가는 게 사실 많이 즐겁다. 쌓여가는 학업의 시간들에 마음이 뿌듯하다.

어느 한 끼는, 참치캔 하나를 뜯어 시원한 오이와 무나물을 넣어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비빔밥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메뉴인데, 생각보다 자주 해 먹는 것 같지는 않다. 불을 안쓰는 요리라는 것 자체로 매력적인데도. 한국이었더라면 좀 자주 먹었을 것 같다면 핑계일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비빔밥 재료들은 보통 나물 종류들이라서 말이야. 신선한 한국 나물 구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고, 건나물을 사자니 굉장히 높은 가격에 망설이게 되곤 하거든.
h에게, 만약에 이사를 하게 된다면 꼭 텃밭을 끼울 수 있는 환경의 공간이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동네의 커뮤니티 가든에 텃밭 신청을 해 놓긴했는데, 큰 인기에 언제 연락 올진 깜깜무소식이고. 둘 중 어느 것이든 성사된다면, 꼭 한국 채소들을 여럿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 주부터 2주가량, 직장에 휴가를 신청해 두었다.
이번 휴가지는 일본이다. 도쿄에 일주일, 그리고 도쿄가 아닌 지역에 또 일주일 머물게 될 것 같다. 나머지 일주일에 머물 도시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을 아직 못 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아직 못 정했기 때문이다. 어딜 가는 게 좋을까. 내가 이번 여행에서 무엇에 집중하고 싶은지 잠깐만 골똘히 고민해 보면 정하는 거야 문제없지만, 사실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리게 된다. 여행 도중에 제출해야 할 과제들을 미리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마음이 분주하다. 에세이 4개, 퀴즈 2개, 과제 2개. 오늘도 새벽까지 붙들고 있어 볼 생각이고.
'보름가량 잠시 일상을 완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라면..!'이라 생각하면 없던 힘도 난다.
이처럼 다소 길게 연속되는 비일상의 시간들은,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 의식하는 중에도 또한 무의식 중에도 엄청난 자산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잘 알아서.
기대가 많이 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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